플라톤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입니다. 이 분은 평생 이데아론을 주장했는데, 이데아라는 것은 '진리'라는 것과 유사한 것 같습니다. 동굴의 비유란 플라톤이 사람들에게 진리가 따로 존재한다는 것을 쉽게 알려주기 위해 만든 우화입니다. 어떤 점을 배울 수 있을지 살펴봅시다.
1. 플라톤 동굴의 비유(동굴의 우화)
동굴의 비유가 무엇인지 내용을 짧고 간결하게 살펴보고 시작합시다.
동굴이 있고, 동굴 입구에 큰 횃불이 있어 동굴 안을 비춥니다. 동굴에는 평생 밧줄에 묶여 지내고 있는 죄수들이 있습니다. 이 죄수들은 횃불을 등지고 동굴벽만 바라볼 수 있게 묶여 뒤를 돌아볼 수 없습니다.
횃불과 죄수 사이에 나지막한 담벼락이 있고, 담벼락과 횃불 사이로 수많은 사람들과 동물들이 와글와글 지나다닙니다. 동굴이라 소리는 왕왕 울리고 죄수들은 그림자만 볼 수 있어 실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이 죄수들이 바로 우리라고 설명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허상인데 우리는 그것이 진실이라고 평생 믿고 산다는 것이죠.
이때, 운 좋은 죄수 1명이 탈출합니다.
죄수는 처음으로 횃불의 존재와 그림자로 비쳤던 것들이 무엇인지 보고, 자신이 평생 보아왔던 것들이 실제와 달랐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죄수는 동굴 밖으로 처음 걸어 나옵니다. 동굴 밖 세상을 보고 죄수는 동굴과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세상을 비추고 있는 태양이라는 존재에 대해 인식합니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이 죄수는 다시 동굴로 끌려들어 가 다시 묶입니다. 실체를 알고 있는 이 죄수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본 것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허상을 보고 있고, 실체는 밖에 있다고 말이죠.
하지만, 다른 죄수들은 이 죄수가 밖에서 끔찍한 경험을 미쳤다고 생각하고 불쌍히 여깁니다. 이때 알 수 없는 힘이 죄수들의 손발을 풀어줍니다. 그런데, 죄수들은 밖으로 나가기는커녕 절대로 나가지 않겠다고 발버둥을 칩니다.
위 내용이 바로 플라톤이 이야기한 동굴의 우화입니다. 어떤 이야기인지 다들 어느 정도 짐작이 되시죠?
2. 플라톤 동굴의 비유 해석과 의미
동굴의 비유를 읽어보면, 어떤 종교지도자가 무지한 중생을 깨닫게 하기 위해 쉬운 예를 들어 설교를 해 주는 듯 한 느낌을 받습니다.
진실한 세계는 따로 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마치 매트릭스 같지 않습니까?
빨간약과 파란 약 중에 선택을 하여 평생 진실을 볼 수는 없지만, 오랫동안 안정적이고 편안한 생활을 하느냐, 사람들에게 미친놈 소리를 듣고 왕따를 당하더라도 진실을 볼 수 있고, 이를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애쓰느냐의 차이입니다.
마지막에 손발이 풀렸음에도 좌수들이 동굴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고 발버둥을 친다는 말이 의미심장합니다. 누군가 이것이 세상의 진실이라고 외쳐도 대다수의 사람들이나 언론이 매도해 버리면 우리는 오히려 그 진실이 더 위험하고 잘못된 것으로 인식하고 피해버립니다.
정말 세상에 진실이 따로 있는 것일까요?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라는 것을 플라톤 자신은 정말 본 것일까요?
마치 불교에서 열반이나 해탈에 도달하기 위해 승려들이 수행에 정진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지만, 약간 다른 점이 있습니다. 플라톤은 이 죄수들을 이데아로 인도하는 역할은 반드시 철학자가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데아를 보기 위해 국가에서 철저히 훈련되고 교육을 받은 철학자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수학, 기하학, 천문, 시, 화성학 등을 배운 이유가 바로 천지 사물의 조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는데... 공감이 되시나요?
플라톤의 주장에 의하면 철학자들이 이런 학문에 정진하여 약 40년 이상 공부하면 동굴에서 빠져나와 진실을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플라톤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철학자라서 우리가 이렇다 저렇다 평가를 할 수는 없지만, 과거에 이런 사상과 생각들을 가지고 살았던 분들이 있었다고 생각해 볼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세상은 진실이 가려져 있으며 우리가 노력하고 훈련해야 실제 진실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지금도 존재합니다.
3. 플라톤 동굴의 비유가 나에게 주는 시사점
저는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가 바로 우리에게 '행복을 찾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행복을 원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평생 그림자에 비친 허상을 쫓아갑니다. 돈, 명예, 쾌락과 같은 것들이겠죠.
밧줄을 풀고 뒤를 돌아보기만 하면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 있지만, 우리는 실제로 밧줄이 풀려 뒤를 돌아볼 수 있음에도 기존의 유혹들이 너무 강해 진실한 행복이 무엇인지 보기를 외면해 버립니다.
이데아라던가, 진실이라던가 하는 것들이 저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데아와 진실을 알게 되면, 세상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전파하기 위한 사명감을 가져야 하는 지도자가 되려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보다, 그 이데아인지, 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저 스스로 진정한 행복을 깨달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실제로 행복이라는 것이 부와 명예와 지위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누구나 그것이 행복이라고 믿고 뛰어가고 있습니다.
경험이 많고, 공부를 많이 한 분들이 그것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고 강의도 하고, 책도 내서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알려주려고 하는데, 저조차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몰라 계속 허둥대며 찾고 있습니다.
동굴의 비유에 나오는 죄수는 이런 제 모습을 설명해 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미 밧줄이 풀린 죄수라는 것도 압니다. 고개를 돌려 뒤를 보고, 동굴 밖으로 나가서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지만, 저 스스로 나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것이죠.
이것은 저 스스로 공부를 더 하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가치관이 더 단단해지면 결국 깨우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렴풋이나마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아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플라톤의 철학이 아니고, 조선시대 역사만 읽어도 인생의 진리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이 어떤 허상을 쫒다가 슬픈 종말을 맞이하는지 폐비윤씨와 홍국영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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