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의 다섯째 아들이었던 이방원이 임금이 되기까지의 여정은 조선 역사상 가장 험난했습니다. 아버지와 신하들의 선택을 받아 세자가 된 것이 아니라 본인의 전략과 힘으로 경쟁자를 물리치고 임금이 되었으니까요.
태종 이방원이 2차 왕자의 난을 평정하고 임금이 된 과정에 대해 살펴봅시다.
1. 2차 왕자의 난 전에 생긴 전조현상
1차 왕자의 난으로 임금이 된 정종 이방과는 이방원의 둘째 형입니다. 그런데, 임금이 된 지 1년이 지나도록 세자 책봉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쿠데타에 성공한 신하들 입장에서는 빨리 이방원을 세자로 책봉하고 왕위를 물려받아 자신들의 힘을 더 강화하고 싶어 정종 앞에서 세자 책봉을 빨리 해 달라고 독촉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정종 이방과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자 신하들도 초조해지고, 이방원도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정종의 입장에서는 동생 이방원을 세자로 책봉하면 바로 임금에서 아웃되어 공양왕처럼 비참한 꼴이 되지 않을까 염려도 되었기 때문에 왕위를 물려주는 일에 대해서는 다소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이방원의 입장에서는 조금 난처했던 것이 위로 셋째형 이방의와 넷째형 이방간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에게 왕위를 달라고 적극적으로 요구하기 어려운 입장이었습니다.
더구나, 넷째형 이방간은 은근히 자신이 임금이 되고 싶어하는 눈치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다섯째인 이방원 입장에서는 명분이 없었습니다.
결국, 네째 이방간은 임금이 되고 싶지만 힘이 센 다섯째 이방원을 경계하고 있었고, 이방원은 형님들을 무시하고 임금 자리를 달라고 할 명분이 없어 서로 묘한 긴장관계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박포라는 인물 때문에 2차 왕자의 난이 터지게 됩니다.
박포는 1차 왕자의 난에서 공을 세운 인물인데, 공신 등급이 2급으로 책정된 것에 대해 불만을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녀서 이방원의 화를 불러일으킵니다.
이방원은 투덜거리는 박포를 귀향 보내버리는데, 유배에서 풀려난 박포는 바로 이방간에게 붙어버립니다. 그리고, 이방간에게 이방원을 눌러야 한다고 자극을 합니다.
어차피 이방원과 한판 붙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이방간은 박포의 자극에 홀딱 넘어가버렸죠.
2. 2차 왕자의 난을 적극 활용한 이방원
넷째 이방간은 실력으로 보나 힘으로 보나 다섯째 이방원의 상대가 되지 않는 인물이었는데, 욕심에 눈이 멀어서 그랬는지 이방원의 유도 전략에 말려든 것인지 세력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이방간의 아버지와 가족들이 이방간을 말렸음에도 결심을 바꾸지 않았고, 이 사실은 바로 이방원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이방원은 이러한 이방간의 전략을 전해 듣고 얼마나 기뻤을까요?
전략가인 이방원은 어떻게 이 기회를 활용할지 수도 없이 시뮬레이션을 해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방간은 제사에 사용할 제물들을 사냥하는 날을 거사일로 잡았습니다.
그러나, 이방원은 이미 모두 알고 있었고, 하륜과 그 수하들이 빵빵하게 대응책을 만들어 놓은 상황이었죠. 실력에서 방간과 방원은 싸움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는데, 방간이 덤벼주니 방원 입장에서는 기쁠 따름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방원은 마치 수하들에 이끌려 억지로 무장을 하는 듯한 연기를 하고, 최대한 본인은 형제끼리의 대결을 피하려고 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갖가지 연기까지 하게 됩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이방간은 전쟁을 선포하고 잘 준비된 이방원의 수하들에 의해 포위되어 혼비백산한 이방간의 부하들은 금세 와해되고 말았습니다.
이때 이방원은 절대 이방간에게 화살을 쏘지 말라고 명령했는데, 눈물 어린 형제애를 보여주는 효과였을 뿐 아니라 실제로 이방간이 화살에 맞는다면 친형에게까지 상처를 입히면서 왕이 되려고 했다는 오명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국, 이방간은 패배를 했지만 정종이었던 이방과와 상왕이었던 태조 이성계, 그리고 이방원 본인의 일치된 의견으로 이방간은 죽음을 면하고 여행을 면하게 됩니다.
대신 이방간을 자극했던 박포가 대신 죽습니다.
2차 왕자의 난도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은 누가 보아도 게임이 되지 않는데 이방간이 먼저 이방원에게 싸움을 걸었다는 것이 이상합니다. 정말 박포라는 인물의 설득에 이방간이 넘어간 것인지.. 의심이 됩니다.
이방원은 이 싸움을 본인이 임금 자리를 물려받는데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이제는 본인 위에 형님들인 셋째 이방의와 네째 이방간 모두 왕위를 물려받는데 관심이 없음을 확실히 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세째 이방의는 이방간이 이방원에게 싸움을 걸었을 때 이미 자신의 권력을 내려놓고 왕권에 뜻이 없음을 밝혔습니다.
이제는 정종 이방과도 더 이상 왕위를 쥐고 유지하기가 힘들어졌음을 스스로 깨닫고 즉시 이방원에게 세자 책봉을 시행하게 됩니다.
3. 감독 이방원, 극본 이방원, 연출 이방원
조선 초기 태조실록, 정종 실록, 태종실록 3권의 책을 보면, 태종이 얼마나 전략적인 인물이며, 야심가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성계를 위해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죽였을 때부터 이방원은 임금이 되고 싶었을 것입니다. 다섯째 아들이었음에도 형님들을 이겨볼 생각을 했던 것이죠.
그런데, 세자 책봉은 공이 제일 많다고 생각한 본인이 아닌 이복동생에게 돌아갔고, 이를 되돌리기 위해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이복동생들과 아버지 이성계의 측근을 제거합니다.
눈치가 보여 바로 임금 자리를 노릴 수 없어 할 수 없이 둘째 형에게 잠시 임금자리를 양보하고, 함께 왕권을 노리는 넷째형 이방간과 싸움을 통해 자신이 가장 강력한 후보임을 과시하여 세자 자리를 차지합니다.
결국, 태종 이방원은 모든 것을 본인의 힘을 통해서 임금이 된 인물입니다. 조선 3대 임금이 된 태종은 스스로 감독이었고, 극본을 짜고, 연출을 담당했던 1인 3역으로 목표를 달성했던 것입니다.
본인이 임금이 될 자격이 있음을 스스로 여러 가지 사건을 일으켜 주인공이 됨으로써 증명했고, 비록 많은 피를 흘렸지만 원하는 임금 자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평생의 목표였던 임금 자리에 올랐지만, 태종 이방원은 특별히 권력을 남용하거나 호위호식을 하는 데 사용하지는 않았습니다.
정말, 조선이라는 국가의 기틀을 다지는데 노력을 했고, 후임 임금을 정하는데 매우 신중했습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세종대왕인 충녕대군을 세자로 책봉합니다.
세자를 임명하고 2개월 만에 임금 자리를 물려주고 깨끗하게 물러나는 쿨함까지 보여준 태종은 다시 평가받을 자격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임금이 되기 위해 갖은 전략과 술수를 사용했지만, 특별히 사사로운 목적을 위해 권력을 행사하지는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요즘 드라마 태종 이방원이 인기이긴 합니다만, 우리나라 사극을 보면서 예전 사람들의 인물됨과 역사적인 사건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를 갖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란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을 비추어 보면서 지금 유사한 상황에 적당한 행동양식과 방향성을 찾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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