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태종 이방원이 시작하면서 이방원이라는 인물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예전에는 태종 이방원이 형제들을 모두 죽이고 임금이 된 야심가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드라마로 방영되면서 상당히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방원이 왕이 되기 위해 벌인 첫 번째 사건인 1차 왕장의 난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 태종 이방원의 불만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했을 때 개국 공신들에 대한 포상이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왕자들에게는 조금씩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고, 그중 이방원의 불만이 가장 높았던 것 같습니다.
당시 왕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과전 100 결이었습니다. 과전은 해당 토지에 대해 국가를 대신해서 세금을 거두어 들일 수 있는 권리였는데, 당시 세금은 수확량의 10%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1등 공신에게 토지 150~220 결에 노비 15~30명을 하사했으니 공신에 대한 성과보상이 왕자들보다 더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토지는 자식에게도 물려줄 수 있는 사유지였고, 공신의 자녀는 과거시험 없이 관직에 오를 수 있는 음서 특전이 있었고, 죄를 짓더라도 영구히 용서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었습니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 하는 데는 공신들만 노력한 것이 아니라 왕자들의 역할도 상당히 많았는데 챙겨주지 않은 것에 기분이 상했던 것입니다. 특히, 고려말 충신 정몽주까지 죽이면서 이성계가 국면전환을 하는데 역할을 했던 이방원 입장은 더 했을 것입니다.
그 와중에 이성계가 이복동생인 방석에게 세자 책봉을 한 것에 대해 충격을 받았습니다.
태조 이성계는 부인이 두 명 있었습니다.
첫째 부인은 신의왕후로 15세에 이성계와 혼인을 했고, 슬하에 6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첫째 이방우, 둘째 이방과, 셋째 이방의, 넷째 이방간, 다섯째 이방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강지처였던 첫째 부인은 이성계가 임금이 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번째 부인은 신덕왕후로 조선 건국과 함께 이성계와 혼인을 하여 2명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첫째가 이방번, 둘째가 이방석입니다.
당시 이방원은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의 정책으로 사병까지 몰수 당해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참고 기다렸습니다.
2.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난 과정
1차 왕자의 난은 약간 미스터리 합니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정도전과 남은이 어린 세자를 끼고 권력을 휘두르기 위해 태조 이성계가 병환으로 누워있는 틈을 타 왕자들을 암살하려고 했다가 이방원에 의해 제압당한 사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고 하네요.
거사가 있었던 날 이방원의 부인인 민 씨는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하면서 이방원을 집으로 불러들입니다. 그리고, 처남인 민무질과 밀담을 나누고 쿠테타 결심을 하고 대궐로 갑니다.
그런데, 궁궐에 들어가기 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이방원은 형들을 설득해 다시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미 집에는 이숙번, 조영무, 민무구, 민무질 등 쿠테타의 주인공들이 모두 모여있었죠.
더구나, 사병 해체로 무기를 회수당했는데 이방원의 부인 민 씨는 몰래 숨겨둔 무기를 꺼내 쿠테타 세력을 무장시켰다고 전해집니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쿠테타가 짜임새 있게 준비되어 있었다는 것과 당시 쿠테타 세력이 40명 수준이고 나중에 사람들이 늘어나 100명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조정의 상비군을 누르고 쿠테타에 성공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역사적으로 태종 이방원이 본인을 약자처럼 보이기 위해 그렇게 기록했다는 설이 있는데 워낙 전략가이므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태종 이방원은 1차 왕자의 난으로 얻을 수 있는 모든 성과를 이룹니다.
먼저, 눈에 가시 같은 정도전과 남은과 같은 이성계의 충복을 죽입니다. 그리고, 세자 책봉 문제의 걸림돌이었던 방법과 방석도 죽입니다.
그리고, 모든 책임을 정도전에게 뒤집어 씌웁니다.
정도전은 죽을 때 매우 비굴했다고 쓰여 있고, 정도전의 가족들도 모두 죽입니다. 정도전은 이후 쿠데타 세력에 의해 평가절하되어 왔으나 조선말 흥선 대원군이 신분을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지금은 조선 초기의 탁월한 혁명가로서 조명되고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하는 등 재평가되는 상황입니다.
1차 왕자의 난의 대미는 바로 세자 책봉에 있는데, 이방원은 쿠데타의 주인공임에도 그 공을 둘째 형 이방과에게 넘깁니다. 마치 겉으로 보기에는 왕의 자리를 형에게 양보하는 모양새로 말입니다.
3. 잘 짜여진 각본이었던 1차 왕자의 난
어떻게 이렇게 자연스럽게 쿠데타가 이루어졌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왕자의 난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아마도 첫 번째 부인의 자녀였던 이방원이 두 번째 부인이었던 방번과 방석을 죽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같습니다.
그러면서 이면에는 자신의 앞날에 방해가 되는 정도전과 남은을 죽여 태조 이성계의 양팔을 꺾으려는 의도였는지도 모릅니다.
쿠데타를 일으킨 시기를 이성계가 병환으로 누워있을 때로 잡은 것도 무력에서 이성계와 맞붙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고, 이방원의 부인 민 씨가 밀정을 시켜 정도전이 술자리로 정신없었다는 점도 이미 파악해 거사를 진행했다는 것이 좀 더 신빙성이 갑니다.
더구나, 하륜은 이숙번을 이방원에게 소개하여 무장세력을 미리 준비시켰던 것과 마지막에 본인의 의도를 감추기 위해 둘째 형 이방과에게 세자 자리를 양보한 것까지 너무나 시나리오가 좋았으니까요.
이후에 세자가 된 이방과는 "그래 내가 맡아 처리해야겠구나"라고 말했다는데, 사전에 이방원과 교감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쿠데타의 내용을 잘 보면, 하륜의 사전 준비와 부인 민 씨의 조력, 이방원의 의사결정으로 성공을 한 것 같습니다. 마무리 방법도 미리 설계해 놓은 것을 보면 일단 이방원은 이성계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을 목표했는지도 모릅니다.
이방원의 덕으로 임금이 된 정종 이방과는 허수아비 임금일 뿐이었으니까요.
조선왕조 역사상 태종 이방원처럼 주도면밀한 임금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섯째 아들로 태어나 이복동생과 형님들을 모두 이기고 임금이 되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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