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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서평

정종 이방과의 인생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

by 월리만세 2022.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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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2대 왕이었던 정종은 크게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그만큼 비중이 낮았는데, 그 이유는 조선 3대 왕이었던 태종 덕분에 잠시 임금 자리에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태종의 형이었던 정종 이방과의 인생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정종 이방과는 태조 이성계의 둘째 아들이고, 태종 이방원은 다섯째 아들입니다. 정종 이방과는 1차 왕자의 난에서 승리한 태종 이방원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었고, 재위 기간이 2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임금으로서는 크게 알려지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1. 정종 이방과가 임금이 된 사연 

 

정종 이방과는 1차 왕자의 난으로 임금이 됩니다. 본인이 싸움에서 이겨서 임금이 된 것이 아니라 동생 이방원이 이긴 싸움에서 엉겁결에 임금으로 추대된 것입니다. 

 

왜 1차 왕자의 난을 평정한 태종 이방원이 임금의 자리를 둘째형인 이방과에게 넘겼을까요? 

 

사실 이방과는 이성계의 둘째 아들로 평생 아버지와 함께 전장을 누빈 무장출신입니다. 체구도 강건하고 무인으로서 순박한 면도 갖춘 인물입니다.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난 날 이방과는 이성계의 쾌유를 비는 제사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난이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 도망칩니다. 이방과는 곧장 성 밖으로 나가 김인귀라는 인물의 집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동생들처럼 생사를 걸고 싸우고 싶지도 않았고, 권력에 대해 욕심도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싸움에서 승리한 이방원은 싸움에 기여를 1도 하지 않은 둘째 형 이방과에게 임금 자리를 양보했을까요? 

 

그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킨 명분이 '적장자를 제치고 서자를 세자로 삼은 것에 대한 잘못을 바로잡자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태조 이성계의 신하들이 곳곳에 포진되어 있어, 이방원이 직접 나서기보다는 이성계와 관계가 좋았던 효자 이방과를 전면에 내세운 것입니다. 

 

더구나, 당시 이방원의 형제들은 모두 사병을 거느리고 있었기 때문에 자칫 또 다른 싸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작용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종이 된 이방과는 정실부인과 아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후사가 없었기 때문에 이방원은 안심하고 형님인 이방과에게 왕위를 넘긴 것이죠. 

 

이렇게 자신이 차지할 임금 자리를 잠시 형에게 맡겨 놓았다고 생각한 이방원은 중요한 자리에 모두 자신의 측근을 심고, 위험요소가 될 수 있는 사병 제도를 정종을 통해 모두 정리합니다. 

 

정종은 어떻게 보면 허수아비 임금으로 2년간 살다가 왕위를 다시 동생 이방과에게 물려줍니다. 

 

 

 

2. 정종의 인생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 

 

하지만, 정종이 임금으로서는 비록 큰 업적도 없고,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그의 인생 자체가 허수아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권력에 대해 욕심이 없었고, 과거 권력자들의 불행한 삶을 알고 있었습니다. 공민왕, 우왕, 창왕, 공양왕 등 고려말의 여러 임금의 말년을 보아왔고, 아버지 이성계의 말로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직접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임금 자리를 위해 목숨을 건 싸움을 하고 있는 동생 이방원도 크게 부담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미 형제를 눈 깜짝하지 않고 제거하는 동생 이방원이 두렵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정종은 정사를 모두 이방원과 대신에게 맡기고, 본인은 시간이 날 때마다 사냥과 격구를 즐겼습니다. 무인 출신이다 보니 신체활동이 제격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격구에 몰입함으로써 정치와 권력에 욕심이 없다는 것을 동생 이방원에게 어필했었는지도 모릅니다. 

 

2차 왕자의 난까지 이방원이 제압하고 임금 자리를 물려주게 되었을 때 정종은 잔치를 열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고 합니다. 덕분에, 이방원에게 남은 여생을 보장받았는지도 모릅니다. 

 

억지로 임금자리를 떠맡게 되었지만, 충실하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물러난 정종은 아버지 이성계에게 끝까지 효성을 다했고, 부인 정안왕후와 금슬이 좋았습니다. 

 

왕위를 물러나고, 마음 편하게 본인 취미생활인 격구를 즐겼고, 무려 20년을 걱정 없이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여러분은 정종의 삶에서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반드시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권력과 출세를 위해 살기보다는 본인 성격에 맞는 삶에 만족하고, 본인이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살다 간 정종이 멋져 보이지 않나요? 

 

인생을 살면서, 배우자와 사이좋게 늙어가고, 자신의 취미생활을 하면서, 본인 수명대로 살다가 죽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3. 역사적인 평가와 별개인 나만의 인생  

 

정종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는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태종으로 이어지는 중간 다리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세상을 떠난 후에 묘호를 받지 못해서 오랫동안 공정왕으로 불렸습니다. 

 

묘호는 종묘에 들어간 후 신주를 부르는 이름인데, 왕의 이름은 묘호의 제일 앞에 붙이고, 그 뒤에 명나라에서 내린 시호를 붙이고, 그다음 후대왕이 올린 존호를 붙이고, 그 다음 신하들이 올린 시호를 붙입니다. 

 

예를 들어, 태조 이성계의 정식 호칭은 다음과 같습니다. 

 

태조-강현-지인계운-성문신무-정의광덕대왕

 

태조가 묘호이고, 강현이 명나라가 내린 시호입니다. 지인계운은 정종이 올린 존호이고, 성문신무는 신하들이 올린 시호입니다. 마지막 정의광덕은 숙종이 올린 존호입니다. 

 

그런데, 정종 본인은 이런 묘호는 물론 존호, 시호도 받지 못했습니다. 후대가 왕으로 인정을 안 한 것이죠. 정종이 묘호를 얻은 것은 무려 260년이 지나서 숙종이 올린 것입니다. 

 

후대의 평가가 이렇게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정종 본인의 인생이 잘못되었고, 보잘것없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정종의 인생을 보면서 생각이 든 것은, 살아 있을 때 내가 즐거운 인생을 사는 것이 나중에 높은 평가를 받는 것보다 더 가치가 있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죽어서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습니다. 정작 나는 전혀 알지도 못할 텐데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허수아비 임금으로 살다 간 정종이 가족, 동료를 모두 죽이고 임금이 된 태종보다 더 행복한 인생을 지낸 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야사인지 모르겠지만, 태종은 말년에 악몽과 환영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본인이 과거에 죽였던 많은 살인과 그에 대한 후회로 평안한 말년을 살지는 못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드라마 태종 이방원 덕분에 다시 태조실록, 정종 실록, 태종실록을 꺼내서 읽어보고 있습니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만화로 되어 있어서 심심할 때마다 꺼내보기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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