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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서평

강화도 농부에서 임금이 된 철종과 그의 복잡한 가계도

by 월리만세 2021.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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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인왕후란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퓨전사극이었는데 현대의 여주인공이 철종 시대 왕후가 되어 풀어가는 이야기인데, 덕분에 철종이 급부상했습니다. 철종은 그렇게 주목받지 못한 임금이었는데, 꽤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살았던 사람으로 그의 가계도를 보면 좀 복잡합니다.

 

가끔 뜻하지 않게 평민에서 임금이나 대기업의 상속자가 되는 스토리의 드라마가 있는데, 실제로 조선시대에 그런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살았던 인물이 바로 철종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인생의 급반전을 이룬 삶은 평범한 인생에 비해 행복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니까요. 

 

철종의 인생을 한번 살펴보고 임금이 된다는 것이 정말 부러운 삶이었을지 생각해 봅시다.  

 

 

 

1. 철종의 복잡한 가계도 

 

철종의 가계도가 복잡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조선시대 임금들이 후세를 제대로 남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원래 정상적이라면, 임금이 결혼을 해서 아들을 낳아 훈육하여 임금이 되기 위한 수업을 쌓게 하고 자리를 물려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조선 후기로 갈수록 임금들이 후사가 없거나, 일찍 세상을 떠나는 일들이 빈번해지면서 적통을 잇지 못하는 일이 생겼던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족보를 펼치고, 계보를 이을 사람을 찾다 보니 철종과 같은 인물이 임금으로 추대되었던 것입니다.

 

철종의 가계도입니다. 

 

시작점은 영조부터 시작을 합니다. 영조 다음 임금은 정조였는데, 정조는 영조의 손자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도세자가 바로 영조의 아들인데, 그는 영조에 의해 뒤주 속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정조의 다음 임금이 순조이고, 순조 다음에 왕이 될 사람이 효명세자였는데,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겨우 8세였던 헌종이 왕이 됩니다. 이렇게 왕의 연령이 낮아지면서 계통을 이를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진 것입니다. 

 

8세에 왕이 된 헌종이 23세에 세상을 떠나고 나니 조정에서는 임금의 계보를 이을 혈통을 찾는데 혈안이 된 것입니다. 다들 일찍 세상을 떠나고 8세짜리 임금까지 내세웠을 정도니, 인물이 없기는 없었던 것이죠. 

 

그러다가, 영조의 손에 뒤주 속에서 생을 마감했던 사도세자의 후손들까지 검토하게 된 것입니다. 사도세자는 표면상 역모를 꾀한 죄로 죽었기 때문에 검토대상이 아니었지만, 워낙 후손이 없다 보니 싹싹 족보를 뒤진 것이겠죠. 

 

사도세자에게는 아들이었던 정조대왕 말고 3명의 아들이 더 있었습니다. 은언군, 은신군, 은전군 3명입니다. 이 중에 은신군은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다가 죽고, 은전군은 정조시대에 사약을 받고 죽었습니다. 

 

이들은 표면상 죄인의 아들들이었으니까요. 마지막 은언군이 살아남았는데, 은언군은 아들 둘과 이광이라는 서자가 있었습니다. 서자니까 정실부인의 후손이 아닌 것이겠죠.

 

여기서 은언군의 적통이었던 아들 둘이 결국 후사 없이 죽음으로써, 사도세자의 후손은 서자 이광이라는 인물만 남게 된 것입니다. 그는 순조가 보호를 해준 덕분에 아들 셋을 낳았는데, 첫째 아들이 죽고 둘째와 셋째 아들만이 생존한 상태였습니다. 

 

철종은 바로.. 사도세자의 아들, 은언군의 서자 이광의 셋째 아들, 이원범이라는 사람입니다.

 

어떠신가요? 복잡하지 않나요?

 

이 정도 가계도 밑바닥까지 싹싹 훑어서 임금 후보를 찾을 정도였다면, 사실상 조선왕조의 혈통은 크게 의미가 없어졌다고 해도 무방할 듯합니다. 

 

 

 

2. 강화도에서 농사짓다가 벼락 출세한 철종 

 

철종이 된 이원범이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이원범의 증조할아버지가 사도세자입니다. 아버지는 서자이므로 이원범은 역모죄를 지은 집안의 서자에게서 태어난 아들입니다. 더구나, 웬만한 사람들은 다 유배생활과 사약을 받고 죽은 상태였습니다. 

 

의지할 집안도, 힘 있는 친지도 없는 이원범은 강화도에서 조용히 농사를 지으며 있는 듯 없는 듯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늘 불안했을 것입니다. 어떤 사건에 휘말려 죽게 되는 것이 아닐지 떨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임금으로 추대된 것입니다. 불안에 떨던 농부에서 임금이 된 사나이가 바로 철종입니다. 신분의 수직상승도 이런 경우가 없습니다. 

 

철종 이원범이 기뻤을까요? 고생 끝! 행복 시작을 외쳤을까요? 절대 아니었을 것입니다. 온갖 정치적인 암투가 벌어지는 조정으로 끌려 들어가는 입장에 되니 쥐도 새도 모르게 죽게 될 가능성이 더 높아진 것입니다. 

 

더구나, 그는 태생이 서자의 아들로 조선시대에서 왕의 혈통을 주장할 입장도 못되었고, 그를 지지하는 신하 세력도 얻을 수 없는 끈도 하나 없는 천둥벌거숭이 왕이었던 것입니다. 

 

이때 철종 이원범의 나이는 19세였습니다. 

 

당시의 시대는 안동김씨 세력이 모든 조정을 장악하고 있던 터라 더더욱 철종은 재위 기간 동안 허수아비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철종은 19세에 임금이 되어 33세까지 14년간 재직을 했는데, 세도가들의 간섭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휩쓸리다가 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납니다. 후궁들 사이에 아들이 몇 명있었는데 모두 어릴때 사망해서 역시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난 왕이 되었습니다. 

 

벼락출세가 반드시 좋은 것인지 생각해 봅시다. 

 

철종 이원범은 차라리 강화도에서 농부로 사는 것보다 더 힘들게 인생을 살다가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전혀 행복하지 않았던 궁 생활을 견디다가 생을 마감했을 것입니다. 

 

금침에서 잠들고, 좋은 음식을 먹었지만, 세도가들에 의해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불안감에서 살았고, 그들의 부정부패와 암투를 보면서 눈을 감고 싶었을 것입니다. 

 

사람은 아무리 돈이 많고 신분이 높아도 마음이 편안해야 행복한 것입니다. 

 

 

3. 철종보다 더 심한 고종의 가계도  

 

고종은 조선 말기 임금을 할 사람이 얼마나 없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고종은 철종 다음에 임금이 된 인물인데 당시 나이가 12세였습니다. 

 

우리는 보통 고종이라고 하면, 아버지 흥선대원군을 생각합니다만 고종이 정말 왕가의 혈통인지를 따져보면 임금이 될만한 수준인지 의심이 갈만 합니다. 

 

고종의 가계도입니다.

 

고종은, 사도세자의 셋째 아들 은선군의 양자 남연군의 아들인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입니다.  

 

왕가의 혈통을 찾으래야 찾을 수 없어 죄인 딱지가 붙은 사도세자의 집안에서 후보자를 찾았던 것도 비상식적인 일인데, 더구나 양자로 들인 남연군의 손자를 임금으로 선택한 것입니다. 

 

양자까지 혈통으로 인정해 주다니 조선시대 혈맥이 갈 데까지 갔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인물이 바로 고종입니다. 그러니, 제대로 임금 역할을 수행할 수 없었고, 국가의 역량을 임금이 아닌 다른 세력들이 좌지우지했으니 멸망의 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의 이야기는 언제나 저에게 교훈을 줍니다. 철종을 보면서 최소한 벼락출세를 기대하지는 않게 되었으니까요. 마음 편하게 사는 것이 좀 더 행복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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