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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이방원이 처가 식구를 모두 죽인 진짜 이유

by 월리만세 2022.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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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태종 이방원을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태종은 왕이 된 이후 피의 숙청을 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본인을 왕으로 만들어 준 공신들인 처가 식구들을 모두 죽인 것입니다. 정치 9단을 넘어서 정치 10단으로 알려진 태종이 처가 식구를 모두 죽인 진짜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드라마도 태종이 조명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인데, 전략가인 태종의 면모를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근거하여 태종이 처가를 몰살시킨 이유를 알아보겠습니다.  

 

 

 

1. 태종 이방원의 배우자 원경왕후 민씨 

 

태종의 배우자인 원경왕후 민씨는 고려말 권력가인 민제의 딸로 18세에 2살 연하인 이방원과 결혼을 했습니다. 16세였던 태종 이방원을 지아비로 임금까지 올라가는 과정을 경험했으니 조강지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구나, 태조 이성계가 고려를 무너뜨리고 왕이 되는 모습을 보고, 배우자인 이방원에게 올인합니다. 이방원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민무구, 민무질 동생들을 끌어들이고, 1차 왕자의 난을 유도하였고 몰래 숨겨둔 모기를 풀어 이방원의 사병을 무장시키는데 도움을 줍니다. 

 

왕위를 놓고 아슬아슬한 형제들의 목숨을 건 싸움에 올인한 여인입니다. 왜냐하면, 만약 이방원이 힘에서 밀려 왕위를 얻지 못하면 어차피 민씨와 처가 식구들도 모두 죽임을 당할 운명이었기 때문이겠죠. 

 

2차 왕자의 난에서 집으로 홀로 돌아온 말을 보고 혹여 싸움에서 패했다고 생각한 민씨는 칼을 빼들고 싸우다 죽겠다고 뛰쳐나갔을 만큼 강한 여인이었습니다. 

 

결국, 이방원은 최후의 승자가 되었고, 배우자 민씨는 원경왕후가 되었고, 동생들인 민무구, 민무질도 무장으로써 군사 방면의 공신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 민제 또한 물심양면으로 이방원을 도와 사실 처가 식구 모두 공신 서열 1등급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본인이 왕이 되는데 목숨을 걸고 싸워준 처가 식구들에게 왜 모질게 대했을까요?

 

여기서 태종 이방원 본인의 성격과 임금이라는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엿볼 수 있습니다. 평범한 범인으로는 사실 상상할 수 없는 일인데, 왕가에서는 가족보다 혈통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2. 태종 이방원이 처가 식구를 모두 죽인 진짜 이유  

 

그 이유는 한마디로 본인의 혈통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실록에 따르면 태종 이방원은 임금이 되자마자 중전인 원경왕후와 거리를 두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여자들을 만나기 시작했죠. 나중에는 9명까지 후궁을 둘 수 있도록 후궁 제도를 법제화합니다. 

 

이렇게 중전과 거리를 둔 이유는 태종 이방원이 여자를 좋아했다기보다 워낙 강하고, 공적이 높은 아내였기 때문에 임금이 된 이후도 가까이하게 되면, 임금 이상의 권력을 행사할 것을 염려했다는 설이 신빙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태종이 처가인 민씨 가족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본인이 죽은 뒤 거대한 외척세력이 되어 자기 아들인 세자가 국가를 다스리는데 방해가 될 것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본인 아들을 걱정해서 방해되는 세력을 깨끗하게 소멸시킨 것이죠.  

 

장인 민제는 수많은 유학자들이 존경하는 인물이었고, 처남인 민무구와 민무질은 군부의 실세들이었고, 중전 또한 정치력이 높은 인물이었기 때문에 태종은 걱정이 많았습니다. 

 

신하들이 민씨 집안 눈치를 보면서 왕권이 약해질 가능성이 있고, 세자 또한 외가에서 자랐기 때문에 외삼촌인 민무구, 민무질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죠. 

 

태종의 장인 민제는 학식이 높은 만큼 권력의 흐름을 잘 파악했던 것 같습니다. 사위인 태종이 본인 가족을 불편해한다는 것을 눈치채고 자식들에서 늘 자중하면서 살기를 강조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태종 이방원은 장인어른인 민제가 죽고 나자 본색을 드러나 중전을 제외한 그녀의 형제들을 모두 죽여버립니다. 이때까지 기다린 것은 어쩌면 장인어른에 대한 태종이 보인 마지막 예의였는지도 모릅니다. 

 

태종은 향후 위험 세력이 될 수 있는 처남들을 아주 사소한 이유를 만들어 모두 죽입니다. 사실 처가 식구 외에 다른 공신들 중에도 위험하다고 판단된 인물들은 모두 죽게 됩니다. 

 

태종 이방원 다음 임금은 모든 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세종대왕입니다.  

 

태종의 업적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제가 생각하는 태종의 위대한 업적은 세종대왕이 마음껏 정치를 펼칠 수 있도록 왕권을 강화해 놓고, 위험 세력을 모두 제거해 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3. 원경왕후 집안의 몰락 

 

일단, 원경왕후 민씨의 아버지 민제는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기 전에 눈을 감습니다. 70세까지 살았고, 고려시대 인물임에도 태종 이방원 덕에 정승까지 했으니 크게 후회 없는 삶을 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민무구, 민무질 형제는 아래와 같은 이유로 죽습니다.

 

태종의 삼촌인 이화라는 인물이 민무구, 민무질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립니다. 그 이유는 태종이 선위(왕위를 세자에게 넘김)의 뜻을 비추었을 때 얼굴에 기쁜 표정을 지었고, 선위의 뜻을 거두자 실망한 얼굴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 임금에게는 아들이 하나만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다는 이유입니다. 

 

이 일로, 민씨 형제는 공신 대우와 녹권을 빼앗깁니다. 그 이후 관직도 회수되고 유배를 가게 됩니다. 

 

그러나 3년 뒤 어린 세자를 내세워 권세를 잡으려고 다른 왕자들을 제거하려 했다는 의심 죄로 제주도로 유배를 가게 되고, 몇 개월 뒤 스스로 자결을 명령하여 죽게 됩니다.

 

중전의 형제 중에 민무회, 민무휼도 있었는데, 이들도 사소한 이유로 죽게 됩니다. 

 

문무회는 염치용이란 인물이 자기 노비가 뇌물을 사용해 국가 소속의 노비가 되어 도망친 이야기를 했는데 이 말에 동조를 합니다. 결국, 이 일은 임금이 노비의 뇌물 청탁에 좌지우지되었다는데 동조했다는 이유로 벌을 받게 됩니다.   

 

처음에는 직첩 회수만 했는데, 태종이 불만족을 드러내자 신하들은 더 센 처벌을 요구했고, 그 와중에 세자였던 양녕대군이 외삼촌들이었던 민무회, 민무휼에게 형님들(민무구, 민무질)은 반역을 꾀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한 것을 태종에게 고하는 바람에 결국 이들도 죽게 됩니다. 

 

당시 태종은 유배의 벌을 내리면서, 도망치지 못하게 하고 자진하려 들면 굳이 말리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이에 과잉충성을 하는 신하들이 알아서 자결을 종용하게 되었죠. 

 

결국, 자기 인생을 걸고 왕비의 지위에 올랐던 원경왕후는 아버지 민제가 죽고, 형제들이었던 민무구, 민무질, 민무회, 민무휼이 모두 죽게 되는 비극을 맞이합니다. 

 

태종은 왕권강화와 왕권 유지에 모든 것을 걸었는지도 모릅니다. 본인이 형제들을 모두 죽이고 임금이 되었으니, 이 자리를 절대로 다른 세력에 빼앗기지 않겠다는 맹세를 했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틈날 때마다 읽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참고하였습니다. 사극을 보면서 궁금한 점을 찾아보는데 참 좋은 책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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